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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사회]5·18 광주민중항쟁을 상징하는 빛바랜 사진 한장이 있다.

양복을 입은 한 젊은이가 공수부대원에게 피를 흘리며 끌려가고 젊은 여성이 피를 닦아주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이 사진은 ‘신혼부부’라는 이름으로 명명됐으며, 28년이 지난 지금까지 공수부대의 가혹한 진압을 대변하고 있다.

이 사진 속의 젊은 남성은 최양민(54·부동산 임대업·광주시 동구 산수동)씨로 밝혀졌다.

그가 밝힌 28년 전 상황은 이렇다. 당시 26살 청년인 최씨는 목포에서 결혼식(5월 10일)을 올린 뒤 16일 신혼여행을 마치고 처가가 있는 광주에 머물고 있었다.

다음날인 17일 양가 친인척 만남이 있었고, 최씨 부부는 금남로 가톨릭센터 인근 미도장 여관에 숙소를 마련했다. 여동생 양미(당시 24세·1996년 목포에서 열차사고로 사망)씨도 목포에서 올라왔다.

18일 오후 2시께 여관에서 쉬고 있던 그는 “계엄을 해제하라”, “시민들을 때리지 말라”는 구호 소리를 듣고 숙소 밖으로 뛰쳐나왔다. 이미 광주 시가는 아수라장이었다.

최씨는 시민들이 보도 블럭을 깨서 나르는 것을 보고 함께 참여했다. 그 순간이었다. 공수부대원 4명이 갑자기 달려들면서 곤봉을 휘둘렀다.

최씨의 얼굴은 온통 피범벅이 됐다. 비명소리를 듣고 황급히 나온 여동생 양미씨도 공수부대원에게 두들겨 맞아 왼쪽 눈 부위를 다쳤다.

“내 머리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보고 다친 여동생이 손수건으로 피를 닦아 주더라고요. 당시 27바늘을 꿰맸는데, 지금도 그 흉터가 남아 있어요.”

이 모습은 당시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당초 부부로 알려진 두 사람은 사실 남매지간이었다. 31사단으로 연행된 최씨는 친구의 도움으로 석방됐다.

“지금도 TV에서 5·18 장면이 나오면 울렁증이 생겨 꺼버려요. 최근엔 병원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진단까지 받았어요.”

그가 사진의 존재를 알게된 것은 최근 5·18 묘지에 들르면서였다. 지난 1월 12일 5·18 민주묘지 안에 있는 사진전시실을 찾았다가 자신의 옛 모습을 발견하게 됐다. 사진 전시실에도 ‘신혼부부’라는 이름으로 설명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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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쿠키뉴스 제휴사/광주일보 이종행 기자 golee@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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